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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낮은 인플레이션의 축복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안근모 기자 [기사입력 2019-10-11 오전 7:23:30 ]

  • 빚을 많이 진 자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전통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꼽혀왔다. 예를 들어 3억원을 대출받아 5억원을 주고 산 집이 10억원으로 부풀어 오르면 이 사람의 빚 상환 부담은 훨씬 가벼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환경, 그러니까 물가상승률이 매우 낮은 상태가 과다채무자에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 환경 역시 빚을 많이 진 사람들에게 이로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낮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중앙은행이 금리를 대폭 내리면, 설사 집값이 하나도 오르지 않고, 소비자물가 인플레이션 역시 바닥이라 해도, 이 채무자가 부담해야 하는 '실질(real)' 금리는 인플레이션이 왠만큼 될 때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과다 채무자에게 반드시 이로운 것도 아니다. 나의 소득과 자산이 인플레이션의 덕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중앙은행이 '실질(real)' 금리를 대폭 인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스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리스크에 특히 민감하게 대응하려는 현대의 액티브한 중앙은행 레짐에서는 어쩌면 낮은 인플레이션이 과다 채무자들에게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

    ⓒ글로벌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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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속도가 지난달 크게 둔화했다. 앞서 전달까지만 해도 3개월 연속 서프라이즈를 연출하며 13년 만에 가장 강력한 단기 상승모멘텀을 보였는데, 9월 들어 기세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꺾였다.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9월 중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전월비 0.1% 오르는데 그쳤다. 시장 예상치는 0.2%였다. 앞서 8월까지는 3개월 연속 0.3%씩 올랐다.

    집세 도움이 없었으면 그마저도 못 오를 뻔했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1에 달하는 주거비가 9월 중 전월비 0.3% 상승했다.

    그래서 식품과 에너지 및 주거비까지 제외한 '근원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비 보합(0%)으로 속도가 뚝 떨어졌다.

    중고차 가격이 한달 사이에 1.6%나 하락하며 한 달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한 것이 근원근원 인플레이션의 발목을 잡았다. 리스로 풀려 나갔던 차들이 대거 만기반환되면서 중고차 가격을 끌어 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신차 가격과 판매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애널리스트들이 경고해왔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bad'는 'good'이 될 수 있다.

    어제 공개된 FOMC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달 FOMC에서 '과반수'(many) 위원들은 금리인하 명분 중 하나로 인플레이션을 언급했다. 일부(some) 위원들은 인플레이션 위험이 계속해서 하방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했다.

    의사록은 "위원들은 전반적으로 경제활동 전망에 대한 하방 위험이 7월 FOMC 이후 다소 커졌다고 판단했다. 특히 무역과 해외경제 약세에서 나타나는 위험을 우려했다"라고 전했다.

    지난 8일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연례총회 연설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2% 부근에 있기를 바라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일본과 서유럽발 디스인플레이션 압력이 있다." "인플레이션 미끄러지지 않도록 2%에 고정시켜야 한다." "기대 인플레이션 2%에서 중심 잡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앞서 발표된 미국의 9월 근원 생산자물가는 전월비 기준으로 4년반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시장 예상치를 대폭 밑돌았다.

    이날 뉴욕증시 주가지수와 국채수익률이 미-중 잠정 무역합의 기대감으로 오름세를 타는 와중에도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의 10월 금리인하 전망은 별로 낮아지지 않았다.

    ⓒ글로벌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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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머징마켓에 관해 Editor's Letter는 그동안 두 가지 지론을 주장해왔다.

    1) 이머징마켓 투자는 환투자와 동일하므로 인플레이션과 경상수지 균형 여부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 이머징마켓이 경제에는 달러의 시세가 가장 중요하다. 자국 경제가 부진해도 달러 가치가 오르면 이머징은 통화를 완화할 수 없다. 반면 달러가 약한 환경에서는 이머징의 통화부양 여지가 커진다. 심지어는 경기호황 와중에도 달러에 대한 자국통화의 과도한 절상을 피하기 위해 부양적 통화정책을 펼쳐야 할 수 있다.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달러화의 고공행진은 그런 점에서 이머징의 금융환경에 긴축적인 압박을 가한다. 다만, 달러가 더 이상 치고 올라가지 않는 것은 이머징에게 다행이다. 이머징에 미치는 금융압박 모멘텀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공행진 하는 달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매우 억제된 인플레이션은 이머징에게 축복이다. 낮은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경제둔화와 달러 압박의 결과이지만, 이머징에게는 통화정책을 완화할 여지를 제공한다.

    낮은 인플레이션은 달러 강세의 모멘텀이 정체된 것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달러가 위로 계속 올라가지 않는다면, 이머징 통화도 아래로 계속 내려가지 않으며, 환율에 의한 이머징 인플레이션 압력도 약화, 소멸된다.

    그 때부터 이머징 인플레이션은 달러 압박으로 누적된 수요 디스인플레이션 경로를 향한다. 지금 주요 이머징들이 그러하다.

    이날 러시아 장기국채 가격이 랠리를 펼쳤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들에게 "당초 제시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의 통화정책 완화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추세와 실제 인플레이션 실적"이 이를 허용해줄 것 같다는 설명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이미 금리를 75bp 인하한 상태다. 3개월 후 3개월 만기 금리선도시장은 현 3개월물 금리보다 44bp 낮게 형성되어 있다. 올 연말까지 두 차례의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전년비 인플레이션은 6개월 연속 둔화해 9월에는 4%까지 떨어져 있다.

    멕시코의 9월 인플레이션은 지난 201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브라질의 사정도 유사하다. 두 나라 중앙은행은 올해 성장률이 1% 미만, 내년에도 2% 미만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멕시코 중앙은행이 다음달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25bp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3회 연속 완화정책을 결정할 것이란 컨센서스인데, 그렇게 해도 멕시코의 정책금리는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실질 금리를 낮추기 위한 추가 인하 가능성과 필요성이 매우 크다는 의미다. 달러만 날뛰지 않는다면.

    브라질 중앙은행은 이달 회의에서 50bp의 금리인하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면 3회 연속 50bp 인하가 된다. 현재 브라질의 인플레이션은 올해 목표치 4.25%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협상 여하에 따라서는, 미-중 양국이 합의한 이머징 완화정책 레이스가 펼쳐질 수도 있다. '위안화 가치가 크게 오르고 달러-위안 환율이 대폭 하락한다면'이란 가정 하에서다.

    ⓒ글로벌모니터

    블룸버그가 10일 인용한 DTCC(The Depository Trust & Clearing Corporation) 자료에 따르면, 행사가격 6.95위안인 2개월 달러-위안 풋옵션이 최근 24시간 사이에 6억5000만달러 규모로 체결됐다. 환율이 그 보다 더 떨어지는 경우 이 옵션 매수자는 돈을 벌 수 있다. 역외에서 현재 달러-위안은 7.11위안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날 달러-위안 풋옵션 거래량은 콜옵션의 약 두배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달러-위안 하락(위안화 가치 상승) 위험을 방어하려는 수요가 늘었음을 의미한다.

    이날 블룸버그는 미국 백악관이 연초에 합의했던 중국과의 환율협정(currency pact)을 잠정합의의 일부로 포함해 이번에 공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연초에 합의했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공개된 적이 없다. 다만 당시 "미국이 중국에 '안정적인 위안화가치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있었다.

    위안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개념이 매우 모호하다. 방향이 뚜렷하지는 않다. 다만 표면적으로는 '위안화 절상 요구'와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이 요구는 '위안화의 추가 절하 방지'를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를 '환율의 횡보'로 해석하지는 않을 수 있다. 위안화 가치의 하방이 미-중 양국 정부에 의해 차단되고 방어되는 것이라면, 시장은 상방을 모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미국과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의 안정 유지'를 골자로 하는 환율협정을 맺는다면, 이는 G2 정부의 위안화 풋옵션 제공과 동의어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만일 위안화에 대한 롱 베팅이 본격화하면 이머징 통화 가치도 따라 오를 수 있다. 우리 시간으로 어제 아침 블룸버그의 '환율협정 검토' 뉴스에 대한 시장 반응도 그러했다.

    이러한 중국과 이머징 통화가치의 랠리는 중국과 이머징에 강한 디스인플레이션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이는 일정부분 원자재 랠리로 상쇄될 수도 있으나, 그 정도는 지난 2005~2008년 당시에는 못 미칠 듯하다. 이머징 중앙은행들에게는 '선진국처럼' 통화정책을 완화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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