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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이시각 샤워실…스텝 꼬이는 연준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구글 싸이월드 요즘 안근모 기자 [기사입력 2019-10-17 오전 6:45:37 ]

  • ⓒ글로벌모니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이건 QE가 아니다" 부인 시리즈는 16일에도 계속됐다.

    이날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준의 재정증권(T-bill) 매입 프로그램은 양적완화처럼 시장으로부터 듀레이션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걸 정말로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이 말은 표면상 틀림이 없다. T-bill은 듀레이션(금리 변동률에 대한 채권가격 변동률, 금리 상승에 따른 채권가격 하락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사들이는 연준의 프로그램은 시장의 듀레이션을 줄여주는 직접 효과가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난달 소동이 발생하기 이전에 연준이 생각했던 구상 속에서만 전적으로 옳은 소리이다. 이제 와서는 적어도 "QE는 아니나 QE 효과는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게 되었다.

    위 그래프는 뉴욕 연준이 지난달(9월)에 발표한 <Projections for SOMA(System Open Market Account) Portfolio and Net Income> 보고서에서 가져 온 것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이 보고서는 불과 한 달 전에 뉴욕 연준이 작성해 내놓은 것이다.

    보고서에서 뉴욕 연준은 1) 조기에 대차대조표를 가파르게 재확대 해 나가는 방안(Larger liabilities scenario), 2) 양적긴축을 종료한 상태에서 일정기간 대차대조표 규모를 유지한 뒤 완만하게 확대해 나가는 기본방안(median scenario), 3) 양적긴축을 종료한 상태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대차대조표 규모를 유지하는 방안(Smaller liabilities scenario) 등 세 가지 구상을 계속 유지했다.

    각 시나리오별로 은행 시스템의 지급준비금은 1)조기에 증가세로 반전해 나가는 완만한 V자형(Larger liabilities scenario), 2)감소 속도가 둔화하다가 완만한 증가세로 반전하는 부드러운 L자형 기본 방안(median scenario), 3)감소세가 2단으로 둔화하되, 감소추세 자체는 지속되는 형태(Smaller liabilities scenario) 등 상이한 경로를 가게 된다.

    연준 대차대조표 정상화 계획수립 이전부터 유지되던 이 틀은 그러나 한 달 뒤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버렸다.

    실제로 결정된 경로를 상형(象形) 하자면 완만한 루트(제곱근)형인데, 위 오른 쪽 그래프에 Editor's Letter가 녹색선으로 임의로 그려 놓은 것에 대략 해당한다(왼쪽 그래프에도 유사한 형태가 적용될 것이다).

    즉, 연준의 대차대조표 정상화 계획은 지난 수년간의 연구와 시뮬레이션이 무색하게도 일정기간의 급격한 대규모 채권매입 과정을 거치도록 순식간에 수정되어 버렸다.

    "QE"라고 의도적인 오해를 받고 있는 부분은 바로 그 난데없이 등장하게 된 위 녹색 그래프의 점프하는 구간이다.

    (한동안 일각에서는 원래 시나리오에서 연준 대차대조표와 은행 지준이 증가하는 경로를 두고 'QE'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이는 '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에반스 총재의 말대로 물론 연준이 이번에 사들이는 것은 듀레이션이 없다시피 한 T-bill일뿐이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인해 시장의 듀레이션에 중립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링에 오르기 전 연준의 계획일 뿐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근 보고서에서 연준의 재정증권 매입이 지나치게 공격적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불러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모니터

    보고서의 취지는 이런 식이다.

    연준이 이제 막 월간 600억달러에 달하는 규모로 재정증권을 사들일 계획이다. 물량이 워낙 커서 단기자금시장 금리가 전반적으로 너무 많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단기자금시장에서 돈을 운용하던 MMF는 차라리 연준의 역레포(RRP)에 돈을 파킹해버릴 수도 있다. 그곳에 가면 연율 1.7%의 확정금리로 무위험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연준이 한 쪽에서는 돈을 풀고 다른 쪽에서는 거둬들이는 꼴이 된다.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연준은 은행 초과지급준비금 금리(IOER)을 인상하거나, 비은행 RRP 금리를 내려야 할 것이라고 BofA는 예상했다. IOER을 올리면 머니마켓 금리가 상승하고, RRP를 내리면 비은행들의 연준 파킹 욕구가 감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 모양이 아주 더러워진다. 이미 벌써부터 나타났던 단기자금시장 교란현상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연준은 수차례에 걸쳐 IOER을 연방기금금리 목표 상단보다 더 낮추는 미조정을 해왔다. 이걸 이제와서 (돈을 너무 많이 풀었다는 이유로) 올려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체면이 상하는 일을 넘어서는 삽질이 된다. RRP를 추가 인하할 경우에는 이미 모호해진 연준의 정책금리 회랑 하단 구조에 대해 의구심이 더욱 커질 것이다.

    BofA는 다른 대안도 제시했다. 문제의 원인이 '과도한 T-bill' 매입에서 비롯되었으니, 실탄의 일정부분은 단기국채(만기 1년 이상)를 사는데 배정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경우 소규모이긴 하지만 시장 듀레이션을 연준이 흡수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대규모 T-bill 매입에 나서는 만큼, 미국 재무부가 발행 전략을 단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한다. 장기물에 배정했던 물량을 단기물로 이전해 조달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연준의 과도한 T-bill 매입' 위험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장기국채 시장의 공급이 감소해 마치 연준이 그 시장에서 신규 수요를 발생시키는 것과 유사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연준이 간접적으로(three cushions) 시장 듀레이션을 흡수하는 QE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글로벌모니터

    연준 안에서 온건한 중도진영으로 평가되는 로버트 카플란 댈러스 연준 총재는 이날 "돌이켜 보면 지난해말 금리인상에 대한 비판이 정당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Editor's Letter가 보아 온 연준, 중앙은행 임원, 더 나아가 공직자 중에서 가장 솔직하고 겸손한 태도 중 하나로 기억될 듯하다.

    아마도 돌이켜 보면, 연준의 양적긴축이 너무 과도했다는 비판도 앞으로 정당했던 것으로 여겨질 날이 올 것이다.

    ☞ 관련기사 : 양적긴축(QT) 더 앞당겨 끝낼 필요성

    ☞ 관련기사 : "스텔스 양적긴축도 당장 끝내라"

    이러한 과오는 단순히 연준의 명성을 더럽힐 뿐 아니라(汚名) 신뢰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손에 쥐어진 실탄이 얼마 없는 뉴노멀 제로금리 하한의 시대에 특히나 심각한 문제가 된다. 제한된 실탄으로써 통화정책 화력을 증폭할 수 있는 레버리지는 오로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 뿐인데, 그 마저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뢰는 한 번 상처를 입으면 회복하기 어렵다. 더 이상의 신뢰 상실과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애를 쓰다보면 신뢰를 잃을 일이 더 생기기 십상이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미국 머니마켓에서 하루짜리 레포 금리가 10%로 치솟는 소동이 일어난 지 일주일 뒤, 관할 책임자인 존 윌리엄스 뉴욕 연준 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지급준비금의 규모보다는 시장의 기능"이라고 말했다. 대형은행들이 초과지준을 독점하다시피 쌓아 놓고도 시장에 제대로 분배를 하지 않고 있어서, 그걸 조사해봐야겠다는 얘기였다. 이는 '우리가 당초 추정한 적정 지급준비금 규모에는 오류가 없다'는 변명으로 들렸다.

    그러나 윌리엄스 총재는 열흘 뒤 말을 바꿨다.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윌리엄스 총재는 "머니마켓의 최근 소동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 지준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수년간 은행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측정해 온 적정 지급준비금 추정 작업이 모두 헛수고였음을 고백한 순간이다.

    한동안 '원흉'으로 지목되었던 JP모건이 그리고 나서 보름 뒤 입을 열었다. 초과지준을 많이 갖고는 있었으나 유동성 규제 때문에 그 돈을 밖으로 굴릴 수 없었다고 제이미 다이먼 CEO가 애널리스트들에게 말했다.

    이 순간 뉴욕 연준의 최초 가설은 완전하게 기각되고 말았다.

    윌리엄스 총재가 FT와 그 문제의 인터뷰를 하던 당시 로리 로건 뉴욕 연준 선임 부총재 겸 마켓데스크는 '시장의 레포 금리가 오르면 은행들은 더 높은 이자를 얻기 위해 연준 초과 지준에서 자금을 인출해 레포시장에 투입할 것이라고 우리는 그동안 예상해 왔다'며 규제 변수의 작동 가능성은 상상해 내지 못했다.

    그리고 다이먼 회장의 해명은 새로운 문제의 씨앗을 뿌렸다. 일파만파다.

    <비앙코 리서치>의 짐 비앙코 대표는 이날 블룸버그에게 "레포시장 요동이 이제는 '자기실현적 예언'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대형 은행이 머니마켓에서 이탈한 것을 알게 된 상대적으로 작은 은행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너무 공격적으로 머니마켓에서 대출해 온 것을 깨닫고는 레포시장에서 발을 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비앙코 대표는 연준이 T-bill 매입을 통해 지준을 충분히 확충하는데에는 수 주가 걸릴 수 있다고 보면서도, 연준으로서는 더 매입해야 하는 압박을 받을 수 있고, 시장은 더 오래 긴축상태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각자가 어둠 속을 짚어 가며 나아가고 있다. 이게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이걸 고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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